[인터뷰]'서울의 봄' 정우성…이제 정의의 아이콘으로
[인터뷰]'서울의 봄' 정우성…이제 정의의 아이콘으로
  • 미디어데일
  • 승인 2023.11.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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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 반란 그린 작품서 '이태신' 역
반란 주도 전두광 맞서 본분 다하는 인물
"황정민 연기에 타죽을 것 같아…막막했다"
"불확실 속 연기…아직도 불안하고 두렵다"
"30년 간 소신 지키며 연기 이태신과 비슷"

손정빈 기자 = "불안하고 두려웠죠."
"언제쯤 그 불안감과 두려움이 사라지던가요?"
"아직도 이겨내지 못했어요.(웃음)"

배우 정우성(50)에게 영화 '서울의 봄' 이태신에 관해 묻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는 일단 캐스팅 제안을 받아 들이긴 했는데,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12·12 군사 쿠데타를 극화한 이 작품에서 이태신은 등장 인물 중 가장 허구에 가깝다. 실제 인물을 참고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데 다가 전두광을 맡은 황정민이 보여줄 연기는 상상만으로도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 연기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타죽을 것 같더라고요."

이태신은 전두광 대척점에 서있다. 전두광이 사욕을 앞세워 권력을 탐한다면, 이태신은 군인으로서 본분을 지키며 공익에 봉사한다. 영화가 어느 한쪽 캐릭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긴장감이 유지될 수 있기에 이태신은 전두광 못지 않게 중요하다.

어떻게 연기할지 고민 중에 있을 때 김성수 감독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몇 해 전 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를 할 때 방송 인터뷰에 나선 영상이었다. 김 감독은 인터뷰 하는 정우성의 모습에 이태신이 있다고 했다. "감독님한테서 그런 영상이 계속 오니까 '이 형이 왜 이러나' 이랬다니까요.(웃음) 제 모습에서 뭘 보라는 건지 처음엔 감이 안 왔거든요." 정우성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인터뷰를 할 때 제 태도를 보라는 얘기라고 판단했다. "그때 아주 조심스럽게 임했어요. 단어 선택 하나조차 고민했죠. 아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제 본분을 다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자세가 이태신에 얹혀지길 원했던 것 같아요."

연기 방향은 정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이태신이 설득력 있는 캐릭터이길 바랐다. 일단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이 이태신을 느끼길 바랐다. 매 장면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준비한 연기를 쏟아냈다. "이태신과 전두광이 복도에서 마주하는 장면을 찍을 때, 멀리서 황정민 형을 봤는데 큰일 났다 싶었어요. 강한 뭔가가 오더라고요. 제가 전두광을 느낀 것처럼 상대 배우도 이태신을 느끼길 바라면서 연기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형 표정을 보니까 이태신을 느낀 것 같았어요." 육군참모총장을 연기한 이성민과 수도경비사령관 자리를 놓고 대화를 주고 받는 연기를 할 때도 그랬다. 매 순간 정우성은 불확실한 연기를 했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그 불확실함 속에 저를 던진 거라고 봐요. 그 불확실함을 인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쉽지 않았지만, 감독님이 보는 방향을 제가 알게 됐을 때 기분 좋더라고요."

고민에 고민을 거쳐 이태신을 연기한 정우성에겐 호평이 쏟아진다. 전두광에 분노하고 이태신에 감동 받았다는 게 관객의 일관된 평가다. 황정민은 현란한 연기로 전두광에 생기를 불어넣고, 정우성은 태산같은 연기로 이태신에 신뢰를 부여한다. 전두광이 어떤 약점이라도 찾아서 파고들 것만 같이 집요하고, 이태신이 전두광 무리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낼 것만 같이 굳건해보이기에 '서울의 봄'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목표한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황정민과 정우성은 그들의 캐릭터를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화하며 이 영화를 궤적에 명중시킨다. "사실 관객 반응이 얼떨떨해요."

요즘 정우성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는 정의다.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강철비' 시리즈와 '헌트' 그리고 이번 '서울의 봄'을 거치며 정의의 아이콘이 된 듯하다. 온라인에선 '헌트'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도 전두환에 맞서는 인물을 연기한 정우성을 두고 '전두환 잡는 데 가장 앞장서는 배우'라는 밈(meme·인터넷에서 자주 소비되는 유행)이 돌고 있다. 실제로 그는 영화계에서 바른 성품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우성은 "빨리 정의로움을 던져버리고 가벼운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비트'를 통해서 저한테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씌어졌을 때도 그런 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제가 청춘의 아이콘이 아니라 그때 연기한 '민'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전 아이콘 그런 게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럴 수도 없고요."

정우성은 관객이 이태신을 지지해주만큼 계속해서 이태신이 부담스러운 캐릭터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이태신이 닮은 부분이 있다면 그건 소신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30년 간 배우 생활을 돌이켜보면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새로운 걸 하려고 추구한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전 제가 작은 씨앗이 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계속해서 도전을 한 배우가 있었고, 그런 길을 가려는 이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용기를 줄 수 있으면 합니다. 물론 저는 제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몰아가진 않아요.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을 계속 간직한 채 연기를 해나가는 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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