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계부채 vs 성장 고민에 일단 관망
미 연준의 금리 불확실성도 높아
남주현 기자 =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지난 2월에 이어 일곱 차례 연속 동결이다.
치솟는 가계부채와 꺾이지 않은 물가가 금리 인상 필요성을 높이지만, 경기 부진과 취약차주 등 금융 불안정에 대한 경계심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움직이기 보다는 관망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금리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도 동결 이유로 거론된다.
한은 금통위는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3.5%에서 동결했다.
금통위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7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올해 2월부터 7회 연속 금리 동결을 이어갔다.
한은의 이번 금리 동결 배경으로는 예상을 비켜나간 물가 경로가 우선 꼽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2.3%대로 내려왔지만, 8월 3.4%를 기록한 후 9월과 10월에는 각각 3.7%와 3.8%로 3%대를 이어가고 있다. 한은은 이번 수정 전망을 통해서 올해와 내년 물가 전망치를 각각 3.6%와 2.6%로 8월보다 올려잡았다.
하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가는 경기가 나빠질 우려가 높아진다. 고물가와 고금리 장기화에 소비와 투자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경기 냉각에 수출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 안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연한 통화정책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올해 3분기 가계부채는 1876조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며 성장 동력을 갉아먹고 있다.
하지만 상반기 취약차주는 300만명에 달하고, 비은행권 부동산PF 익스포저(위험노출액)상반기 121조원에 육박해 금리를 를 올리기에는 금융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다.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하고 있는 정부와의 엇박자도 골칫거리다.
통화정책 운용도 물가에 집중됐던 것과 달리 이제는 성장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에 금리 인상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는 1%대 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내년 성장률도 불투명하다. 한은은 내년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1%로 소폭 내려 잡았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달 초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8월보다 0.1%포인트 낮췄고, 내년 전망치도 2.2%로 내렸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지난달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 성정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춘 1.4%로 제시했지만, 내년 성장률은 0.2%포인트 올린 2.4%로 내다봤다.
그렇다고 금리를 내리기에는 미 연준의 긴축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11월 FOMC 이후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훌쩍 커졌지만, 연준은 여전히 고물가를 경계하며 긴축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높아졌지만,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금리를 올리긴 힘들다"면서 "미국의 금리 결정을 지켜볼 필요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