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될수록 더 맛있는 전복
삶이 고될수록 더 맛있는 전복
  • 장원영 기자
  • 승인 2018.08.17 16: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출처: 쿡tv
사진출처 : 쿡tv

힉스는 아름다운 색시를 만나 장가가기 전까지는 거의 빠짐없이 여름마다 아버지 고향인 부산으로 피서를 갔다. 첨벙대며 해변을 뛰어다니고 물안경을 낀 채 바닷속을 보려고 둥둥 떠 있다가 수평선 아래로 해가 빠지고 나면 짠물을 깨끗이 씻고 집으로 돌아 왔다. 바다가 보이는 식탁에서 각종 회와 찌개로 저녁을 먹고 침대로 쓰러지는 것이 일과였다. 피곤한 와중에도 다음날 아침 식사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잠이 들었다.

휴가 중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일출을 보자, 아침 바다에 나가자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퉁퉁 부은 눈을 뜨는 둥 마는 둥 한 채 산책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식탁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뽀얀 전복죽. 얼굴을 담가도 될 만큼 커다란 사발에 한가득이다. 구수해, 고소해, 담백해, 부드러워, 쫄깃해를 머릿속에서 연발하며 뚝딱 그릇을 비우고 나서 다시 여름 바다와 일전을 벌이러 후다닥 뛰쳐나간다. 기분도 기운도 최고다.

전복은 예로부터 유명한 보양 식재료다. 고기와 달리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이 적고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전복을 편으로 자르고 '게우'라고 부르는 짙은 초록빛 내장과 함께 먹는 회를 최고로 치는데 전복의 변신은 실로 끝이 없다. 전복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염소고기 등 여러 종류의 육류와 삶고 찌고 굽고 볶고 튀기고 끓여서 함께 먹을 수 있다. 해산물과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물고기에 곁들여도 무리가 없다. 대부분의 채소, 과일과 만나면 보양식의 고정관념을 깬 상큼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게다가 간장, 고추장, 된장, 젓갈, 식초, 카레, 토마토소스, 크림소스, 치즈, 마요네즈, 꿀 등 집에 있는 웬만한 양념이나 소스와 모두 궁합이 딱딱 맞아 요리하기도 수월하다.

전복은 다시마, 미역 등의 해조류를 먹고 사는데 그 내장은 해조류의 향과 맛을 응축해놓은 진액 같다. 아이들에게는 별로겠지만 어른들은 구수하면서도 진한 바다 맛에 홀딱 반하곤 한다. 단, 살아 있는 전복이 아닐 때는 과감히 포기하는 편이 건강을 위해 좋다. 회로 먹을 땐 얇게 저미고, 구울 때는 속속들이 익히지 않아야 씹는 맛이 좋으며, 찔 때는 칼집을 내면 부드럽게 익는다. 껍데기째 넣고 국물을 낼 때는 최소 1시간 이상은 끓여야 껍데기 특유의 맛이 배어 나오며, 말린 살로 요리할 경우 맛과 향이 배가된다.

전복의 수명은 평균 10년인데 맛은 5년 전후의 것이 좋다. 전복 껍데기는 1년에 평균 2.5cm 정도 자란다고 하니 길이가 10cm 안팎되는 것을 고르면 된다. 같은 해를 살았어도 몸집이 크고 힘이 좋을수록 상품으로 친다. 물살이 거센 바닷속 바위에 붙어 사는 전복일수록 해조류도 열심히 먹고 많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완도 전복이 유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완도의 바다는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바닷속은 소용돌이치듯 거센 여울목이 많고 해조류가 풍부하다. 배를 몰기에는 험한 조건이지만 전복이 건강해지기에는 환상적인 곳인 셈이다. 양식이 활발해지면서 전복 값도 예전보다 많이 내렸으니 가족 보신을 위해 전복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삶이 고될수록 맛있어지는 전복이 고된 우리네 삶에 기운을 불어넣어줄 테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