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원
세상의 기원
  • 차영일 고문(원장, 차영일비뇨기과의원)
  • 승인 2018.08.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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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일 원장
차영일 원장 (비뇨기과 전문의, 한국성문화회 회장, 세계성박물관 관장 )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기원”(1866)은 인간의 생명이 탄생하는 여성의성기를 그린 초상화이다.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것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기원은 로맨틱 사실주의와 에로틱한 관음증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 당시에는 예술이냐 외설이냐 논란이 있었으나 21세기에 들어와서 이 작품은 예술작품으로서 많은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있고 현재 파리 국립미술관 오르세에 전시되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여성 작가 오를랑은 전쟁의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남성의 성기를 그리기도 했다.

세상에 성()이 없다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이 종족보존이 안 되어 벌써 멸망했을 것이다.

Sex란 단어는 너무 광범위하여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생물학적인 차원의 남, (male, female), 성행위와 연관된 부분뿐만 아니라 사회 심리적, 행동적, 문화적 차원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어의 남성, 여성을 구별하는 섹스(sex)와 사회문화적 구성물인 남녀를 표시하는 젠더(gender), 그리고 성행위를 비롯하여 보다 다양한 성적 욕망과 정체성을 지칭하는 섹슈어리티(sexuality) 등의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성을 지칭하는 용어인 섹스의 어원은 라틴어의 나눈다는 sectu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절단하다 secare에서 생겨났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인간의 성적인 호기심은 태어나서부터 죽는 날까지 지속된다.

2,500여 년 전 공자는 인간의 제1의 본능은 식()이오. 2의 본능은 성()이라 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는 것이 제일이고 배가 불러야 성()의 생각도 난다. 그 외 수면욕, 명예욕, 물욕 등이 있다. 인간의 일차적 본능은 식욕과 수면욕 그리고 성욕이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강한 생리적인 기본 욕구라는 것이다. 그다음 제2의 본능은 모성애, 부성애, 우정 등이라 한다.

사람이 먹는다는 즐거움이 없으면 인생은 사막과 같이 삭막하다고 할 수 있다.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렇다고 맛있는 것만 너무 많이 먹다가는 영양 과잉으로 비만증이 되고 생활습관병(성인병)에 걸려서 생명이 단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편향된 식사를 하지 않고 채식만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포식과 영양 과다도 문제이지만 다이어트를 한다고 너무 안 먹어서 영양결핍이 생기는 것도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섹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힘이 남아돈다고 함부로 휘두르면 생명까지 위협 받을 수 있으니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 하다는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섹스는 그 자체가 지닌 신비로운 재생산능력으로 인간에게 성스러운 감정(sacred feeling)을 들게 하는 한편 성 자체의 파괴적인 능력으로 인해 저속한 감정을 들게 하는 양면성(ambivalence)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성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섹스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공유하는 것이다. 결혼한 부부에게 성은 인생의 전부이며 환희이고 만족스러운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을 나누어 가지는 것이 부부간의 성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결혼한 많은 커플이 만족스러운 사랑의 기쁨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란 곧 인간(人間)이다. 그러므로 인간교육(人間敎育)은 곧 성교육(性敎育)이다.

이제는 오랜 세월 동안 감춰지고 억압되고 잘못된 성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터놓고 진지하게 토론할 시기에 놓여있다. 섹스를 부정적으로 보고 모조리 외설시 하려는 너무 지나친 유교적인 태도가 오히려 건강치 못한 사회현상을 빚을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칭 지식인이라 해도 어떤 사람은 성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을 찌푸리고 점잖은 척한다. 올바른 성 지식은 전혀 배우지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남녀의 성 차이나 해부학적인 구조도 모르고 어떻게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시키겠다는 말인가. 우리가 식생활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이 성생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여야 한다. 성을 자연스럽게 보고, 접하고, 다루어야 한다.  다시말해 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성은 굳이 아름답다거나 위대하다거나 하는 꾸밈을 할 필요도 없고 추악한 것이라고 할 것도 없다. 성을 금기시하고 있는 사이에 그릇된 인터넷 성문화가 쏟아져 들어온다. 마치 새로 산 컴퓨터에 미쳐 좋은 지식을 넣기 전에 그릇된 지식을 먼저 집어넣으면 옳은 지식을 넣을 자리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컴퓨터는 delete 하면 지울 수가 있으나 인간의 머리에 한 번 들어간 그릇된 지식은 좀처럼 바꾸기 힘들다. 그러니 일찍 서둘러서 성교육을 철저히 하여야 하겠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올바른 성교육프로그램이 있지만, 호기심으로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비뚤어진 것만 보고 있으니 그릇된 교육을 받는 셈인데 교육기관은 이런 문제에 엄두를 못 내는 셈이다.

성년기에 들어서 결혼을 하고 가끔 성관계가 안 되어 병원을 찾는 부부들을 조사해 보면 남성들의 기질적인 병도 많지만 부부 양쪽에 성격적인 문제와 성 지식이 아주 부족한 것도 많다. 양쪽 다 성에 대한 지식도 없고 서로 마음의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먹한 부부관계를 해결하는 방법은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대화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배우자에게 전달하고 또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것을 잘 받아들여 자신에게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부부관계도 전략적인 관리와 경영이 필요하다.

서로 자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부부일수록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포옹, 키스 등의 피부접촉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이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고 미소를 머금고 서로 손잡고 상대방의 등을 두드려주기, 손잡고 걷기, 서로 안아주기와 같은 아주 간단한 의사소통 행위의 연습이다.

대화가 끊기고 서로 격한 감정을 품고 있는 부부가 이혼을 피할 가장 강력한 심리학적인 수단은 피부접촉이다. 헤어지는 부부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어쩌다 서로 피부가 닿게 되면 소름이 끼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서로 피부를 맞대는 일이 가능한 부부는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 사랑해서 만지는 것이 아니다. 만지면 사랑하게 된다. 서로 부부인 것이 부담스러워질수록 만져야 한다. 삶의 의욕이든 애정이나 남자의 그것이든, 무엇이든 만질수록 커진다. 애무는 단지 성적인 흥분만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가장 귀한 의사소통이다. 내가 상대방을 만지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에게 만져지는 것이다. 이것이 두 사람이 동시에 느끼는 원초적인 경험이다.

노년기(황혼기)에 들어서도 특히 남자들은 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노인의 성을 주책이라고 폄하해서는 안 된다. '죽어도 좋아' 라는 영화는 노인의 성을 주제로 한 것인데 그동안 쉬쉬하고 지냈던 노인의 성과 사랑을 정면으로 다루어 화제를 일으켰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60대 이상에서 40대 못지않게 성생활을 하고 있고 80대에도 성에 관심도 많고 실제로 성생활을 하며 먹는 약이나 주사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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