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 맛내기
고추장 맛내기
  • 임동산 기자
  • 승인 2018.09.06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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힉스가 어릴 때 할머니 댁 식탁 위에는 늘 작은 종지 2개가 놓여 있었다. 간장과 고추장 종지다. 그때 그 고추장은 꺼내놓은 지 오래돼 조금 굳기도 했지만 입자가 참 굵었다. 맛은 거친 칼칼함과 투박한 단맛이 강하고 매웠다. 된장국물이나 탕국 한 술을 밥 위에 떠 얹고 그 고추장을 넣어 슥슥 비벼 먹는 비빔밥은 요즘 시판하는 달달한 고추장으로 비빈 것보다 몇백 배는 더 맛깔스러웠다고 기억된다.

고추장의 고장 순창에 가면 각종 재료로 맛을 낸 고추장을 만날 수 있다. 찹쌀, 보리, 쌀눈, 고구마, 수수, 팥, 밀가루, 대추, 인삼, 호박, 사과, 복숭아, 마늘 등 재료에 따라 맛과 종류가 다양하다. 심지어 일부러 덜 맵게 만든 고추장도 있는데 매력 없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할 수 있다는데 동의한다. 어떤 재료를 더하건 고추장이 맛있으려면, 줄기에 달린 채 윤기 날 정도로 붉게 익은 고추를 햇볕에 바싹 말려 사용해야 한다. 고추를 제대로 말리려면 널어둔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매일 마른 수건으로 닦고 뒤집어줘야 한다. 햇볕에만 말린 고추가 태양초이고, 열로 쪄서 말린 고추는 화건초다. 화건초는 색이 태양초보다 검붉다. 물론 태양초보다 감칠맛도 떨어진다.

고추장은 보통 3월부터 5월까지 담근다. 담그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간을 세게 해야 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아파트에서도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추장을 담가 먹을 수 있다. 고춧가루, 엿기름가루, 찹쌀, 메줏가루, 소금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항아리가 필요하다. 찹쌀은 깨끗하게 씻어 물에 12시간 정도 불려 가루로 빻는다. 따뜻하게 데운 물에 엿기름가루를 풀어 잠시 두었다가 손으로 주물러 체에 걸러 건더기는 꼭 짜서 버리고 엿기름만 가라앉힌다.

솥에 엿기름의 맑은 웃물만 따르고 찹쌀가루를 곱게 푼 다음 불에 얹어 따뜻하게 데운 뒤 불에서 내려 그대로 둔다. 30분 정도 지나 찹쌀가루가 삭아 묽어지면 다시 불에 올려 한소끔 끓인 후 불을 약하게 줄여 양이 3분의 1정도로 줄 때까지 끓인다. 넓은 그릇에 쏟아 식힌 후 메줏가루와 고춧가루를 넣고 골고루 휘저어 하룻밤을 둔다. 다음 날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굵은소금은 방망이로 곱게 빻아 넣어야 간 맞추기가 쉽다. 소금은 간수를 뺀 것을 사용해야 장맛이 써지지 않는다. 고추장을 햇볕에 바싹 말려둔 항아리에 담고 위에 웃소금을 뿌린 다음 광목이나 망사를 덮어 햇볕에 두고 익힌다. 두꺼운 천을 덮어 그늘이 지면 곰팡이가 필 수 있으니 햇볕을 골고루 받도록 해야 한다. 고추장을 담그고 한 달 동안은 일주일에 한번 정도 나무 막대기로 항아리 밑바닥까지 저어 위아래를 섞어야 골고루 익는다. 항아리는 숨을 쉬는 독이니 매일 깨끗이 닦는 정성이 보태져야 장맛도 좋아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고추장은 담는 공보다 고추를 말리고 단지 닦아주는 정성이  맛내는 데는 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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