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즐겁게 하는 나물 반찬
마음을 즐겁게 하는 나물 반찬
  • 임동산 기자
  • 승인 2018.09.07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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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좋아하는 아버지, 채소를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35년을 한집에서 살다 보니 고기 맛을 뒤늦게 알게 됐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고기 맛을 본 뒤로 술안주며 밥반찬으로 고기를 섬기게 되었다. 집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부위를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그림도 붙여놓았다. 그런데 아플 때는 신체에 기운을 불어넣는 고기가 오히려 탈을 부른다.

나물 (사진출처: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이야기)
나물 (사진출처 : 맛있고 재미있는 한식이야기)

몸이나 마음이 갈라지듯 아픈 날에는 멀겋게 끓인 돤장국에 따뜻한 밥을 적셔 먹고 잠들어버리는 버릇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된장과 김치 정도로 그친 나만의 ‘치료식’을 좀 더 버라이어티하게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전국의 백반 집을 경험하고 나서다. 이름도 모르는 각종 채소가 상에 올라오는 것뿐 아니라 이름을 알던 것들의 기상천외한 변신에 감탄하며 무릎을 ‘탁탁탁‘ 계속 치고 앉아 있어야 될 만큼 그 종류가 다양했다. 정리해보면 대충 이렇다.

이른 봄에는 냉이, 씀바귀, 꽃다지, 어린 쑥, 망초 순, 광대나물, 점나도나물, 무말랭이와 겨울을 견딘 신 김치, 동치미를 먹는다. 얼어버린 감자는 전분으로 만들어 수제비를 빚거나 겨우내 보관해둔 고구마는 생으로 깍아 먹는다. 봄이 완연해지면 보리 싹, 원추리, 돌나물, 달래, 유채, 머위, 민들레 잎에 아껴두었던 말린 나물까지 몽땅 꺼내 마음 놓고 요리해 먹는다. 운 좋으면 지난가을에 심어 겨울을 지낸 배추를 뽑아 시원한 맛을 볼 수도 있다. 길고 통통해진 쑥으로는 인절미, 버무리, 빵, 튀김, 떡, 지짐을 만들고 진달래꽃을 따 전을 지져 먹는다. 여름에는 마늘잎, 마늘종을 솎아 봄에 만든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머위 대, 뽕잎, 왕고들빼기, 상추, 호박잎은 감자밥이나 밀밥, 보리밥을 지어 싸 먹는다. 가지, 오이, 풋고추, 애호박을 따다 무쳐 먹고 구워 먹고 구워 먹고 장에 찍어 먹고 토마토는 양배추, 양상추, 당근과 함께 샐러드로 만들어 먹는다. 풋콩과 옥수수는 삶아두고 오며 가며 집어 먹는다.

가을에는 여름 끝물의 풍성한 채소와 나물을 손질하고 말려 보관하기 바쁘다. 고구마, 감자, 땅콩도 먹고 남은 건 저장해 둔다. 햅쌀에 수수, 조, 가장을 섞어 윤기 흐르는 밥을 짓고 능이버섯, 송이버섯으로 향긋한 반찬을 만든다. 도토리는 주워 묵을 쑤고 국수를 뽑고 전도 부친다. 바름나물, 고구마 순, 월동초, 갓, 시금치, 토란대, 고추잎은 무치거나 말리거나 장아찌로 담가 다양하게 맛본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건조한 가을 태양 아래 바싹 말린다. 겨울에는 무 잎을 엮어 말려 시래기를 만들고, 무를 곱게 잘라 채반에 널어 무말랭이를  만든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동치미를 담가 차곡차곡 쌓아두고, 겨울 간식으로는 서리 오면 수확한다는 서리태을 볶아둔다. 말려둔 나물이며 버섯의 깊은 맛을 살려 반찬을 만들고 따뜻한 방 안에서는 콩나물을 키워 먹는다. 모두가 여행 중에 가본 수많은 백반집에서 배운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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