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배산성지에서 증거 발견
부산,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배산성지에서 증거 발견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8.10.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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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부산시립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은 배산성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배산성지 문화재 2차 발굴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연제구 연산동 산 61번지에 위치한 배산성지는 토축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은 성벽이 급경사면에 축조된 관계로 대부분 허물어져 존재유무의 파악조차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특히, 배산성지에 대한 문헌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고고학적 조사 외에는 배산성지의 실체를 파악할 단서가 없었다.

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은 작년 1차 발굴조사에서 영남 최대 규모의 원형 집수지 2기와 을해년(乙亥年)명 목간을 발굴했으며, 대나무로 엮은 발이 출토하는 등 부산의 고대 역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또한 배산성지 정상 아래 토성의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높이 6m 규모의 건물 축대와 길이 13m 이상 규모의 대형 건물지가 집수지 서쪽 약 30m 떨어진 경사지에서 확인되었다.

축대는 산 사면에 건물지 조성과 건물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하여 쌓은 것을 말한다. 외벽 면을 맞추고, 그 내부는 크고 작은 깬돌이나 하천석을 채워 쌓은 형태이다. 외벽 바깥은 6단 높이의 석축으로 보강되어 있다.

대형 건물지는 축대의 서쪽 상부에서 길이 12.8m, 너비 10m 규모로 확인된다. 건물지는 남-북 기단열과 초석 및 배수시설을 갖추었다. 초석 간의 거리는 동,390, ,340이다. 평탄지 토층의 양상으로 볼 때, 건물지를 비롯한 석열 등은 최소 2차례 정도의 증개축이 있었을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의 조사를 통해 배산성지는 동남해안에서 동래지역으로 진입하는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적 요충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영남 최대 규모의 원형집수지 2기와 을해년(乙亥年)명 목간, 대형 건물지 및 치밀하게 쌓은 성벽시설은 배산성이 고대에 정치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산성임을 말해주고 있다.

유사한 규모와 구조를 가지는 부산 인근의 고대산성으로는 김해 분산성(사적 제66), 거제 둔덕기성(사적 제509), 남해 대국산성 등이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배산성지는 축조 당시 이 지역의 중심 치소성(治所城)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번 발굴조사로 배산성 내의 공간구조 및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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