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학교 운동부 지도자 폭행 징계시 학생·학부모 탄원서 배제
서울교육청, 학교 운동부 지도자 폭행 징계시 학생·학부모 탄원서 배제
  • 뉴시스
  • 승인 2021.02.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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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징계 시 학생·학부모 탄원서 배제키로
故최숙현 사건때도 탄원서 작성 강요 지적
"학부모 내세운 사건 무마 관행 근절할 것"
 서울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축구공이 놓여있는 모습.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뉴시스DB). 2021.02.19. photo@newsis.com

김정현 기자 =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선수 폭행이나 금품수수 등 갑질 사건에 연루된 학교 운동부 지도자 징계 시 '징계 수위를 낮춰달라'는 학부모 탄원서나 진정서를 일절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학부모 탄원서가 공정한 징계 절차에 지장을 줄뿐만 아니라, 조직 논리를 이유로 탄원서를 강요받는다는 학부모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학부모가 자녀의 대회 출전이나 상급학교 진학시 불이익을 우려해 지도자의 잘못을 감싼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나온다.

21일 시교육청은 지난 19일 시내 학교 운동부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비위에 연루된 지도자를 징계할 때 학부모와 학생선수의 탄원·진정서는 접수하지 말고 배제하라"는 내용의 '학교 운동부 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 공문을 내려보냈다.

설령 학부모가 탄원서를 학교에 제출하더라도 시교육청 본청 또는 교육지원청이 징계 결과를 직접 보고받아 탄원서 또는 진정서를 반영했는지 따져 물을 방침이다. 시교육청은 갑질 사건에 연루된 지도자가 사직서를 제출해도 학교가 반드시 징계를 밟아 교육청에 보고하도록 했다. 징계 절차를 피하고 다른 학교로 도피성 취업을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징계를 하는 사람들은 여러 관점에서 평가해야하는데, 운동부의 내밀한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학부모나 선수의 말에 의존하게 된다"며 "이 때 학부모가 탄원 형식으로 압박을 해 정보 왜곡이 벌어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대회 출전, 경기 실적에 악영향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지도자의 폭력을 감싸거나 부추기고, 비위가 적발돼도 이를 무마하기 위해 탄원서를 쓰는 사례도 나온다.

이무열 기자 = 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가혹행위 한 혐의를 받는 장윤정 전 주장이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5일 오후 대구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0.08.05.lmy@newsis.com
이무열 기자 = 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가혹행위 한 혐의를 받는 장윤정 전 주장이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5일 오후 대구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0.08.05.lmy@newsis.com

최근 경찰 재수사가 진행 중인 송파구 A고등학교 아이스하키팀 지도자의 상습 폭행 의혹 사건도 학부모와 학생선수가 강요를 받고 거짓 진술을 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당시 1차 장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치가 학생 선수를 폭행하는 제보 영상에 대해 해당 학생 선수들과 학부모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코치와 연출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육지원청이 감독교사, 코치, 운동부 학부모 등 관련자를 상대로 면담을 벌였으나 이들의 진술도 일치했다.

당시 검찰도 경찰 조사 결과 '기소의견 없음'(죄없음) 통보한 상황이라 결국 징계를 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났지만 이후 상황이 뒤집혔다. 해당 코치가 지난 2019년 1월 라커룸에서 학생 선수를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폭행하는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이를 증거로 경찰은 재수사에 들어갔으며, 대한아이스하키협회도 해당 코치를 지난 17일 제명 조치했다. 시교육청도 본청이 직접 나서서 특정감사 중이다.

가해자들이 징계를 무마하기 위해 탄원서 작성을 강요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코치와 선배 선수의 상습폭행을 견디다 못해 숨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고(故) 최숙현 선수의 사례가 그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당시 최 선수의 죽음에 대한 수사를 촉구한 지인의 청와대 국민청원글을 살펴보면 "(감독, 팀 닥터, 일부 선수 등) 고소한 대상자들은 전 경주시청 소속 선수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내가 때린 것 본적 있냐'는 말을 쏟아냈다"며 "'최 선수가 정신병이 있다'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탄원서 작성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강민정 의원은 "운동부 지도자들의 폭력을 비롯한 각종 비위행위는 '경기력 향상' 등의 명분으로 정당화됐고,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는 일념으로 학생 선수들을 맹목적으로 몰아치는 것에 모두가 동참하며 사실상 '지옥의 카르텔'을 만들어 왔다"며 "인권 침해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학교 운동부도 이제 사회적 질타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 인권을 존중하는 구조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도 "보도에 따르면 당시 일부 진술이 강요에 의한 거짓이라고 하는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지도자가 사건에 연루되면 보통 학부모를 내세워 무마시키는 것이 우리 체육계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관행이 근절될 수 있도록 교육청 내 학생인권교육센터 등 소관 부서가 역량을 투입해 폭행과 갑질이 근절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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