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길 대표] 마크 로스코(1903-1970)
[강성길 대표] 마크 로스코(1903-1970)
  • 강성길 오션퍼시픽 대표
  • 승인 2018.07.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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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등과 함께 미국 미술을 이끈 대표 추상표현주의 화가이다. 거대한 캔버스에 정사각형의 색면 추상을 쌓아 올린 추상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추상표현주의 화가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로스코는 단순히 보이는 색이 아닌 그 안에 있는 깊은 내면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비극, 희열, 운명 등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한 것, 특히 삶과 죽음, 열정 같은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붉은색을 가장 좋아했다.

로스코는 1903년 러시아 드빈스크(라트비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유대인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자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민자이면서 유대인인 로스코에게 미국에서의 학창시절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예일대에 입학하지만 2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예술가 공동체인 뉴욕 아트 슈트턴트 리그에 입학해서 미술을 배웠다. 그리고 유명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돌아다니면서 미술 공부를 했다.

로스코는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 유대인,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덫이었다. 1960년대 후반 마크 로스코는 평생을 따라다닌 이방인이라는 꼬리표, 그리고 예술가로서 명성만을 쫓는 자기 모습에 혐오감을 느꼈다. 결국 우울증이 심해지고 건강이 악화되는 최악의 상황에서 예순여섯의 마크 로스코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로스코에게 근대 유럽 화가들의 작품은 훌륭한 교과서 였다. 그는 마티스, 몬드리안 등의 작품을 보고 색감을 익히고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할지 연구했다.

로스코는 문학과 철학에도 심취했는데, 특히 니체와 프로이트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그뿐 아니라 음악, 역사,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지적 호기심을 채웠다.

초기에는 인물을 그리거나 형태가 등장하는 사실주의 그림을 그렸다. 이후 형태와 공간, 색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1940년대 후반에는 캔버스에 사각형 같은 형태가 둥둥 떠다니는 추상화를 그렸다. 1952년, 드디어 뉴욕 맨허튼에 넓고 천장도 높은 작업실을 얻으면서 로스코만의 커다란 색면 추상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이 관람자와 교감할 수 있는 조건을 강조했다. 한개의 작품당 관람객의 숫자를 일정하게 제한했으며, 작품에 번호를 매기지 않았다. 벽은 하얗게 칠하고 조명은 어둡게 했다. 액자에 끼우지 않는 작품을 바닥에 닿을 만큼 낮게 걸도록 했다. 자신의 작업 환경과 최대한 똑같이 해서 보는이로 하여금 화가의 창작 과정에 동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미국 휴스턴에 로스코 채플린이라는 곳이 있다. 십자가와 예수가 있는 교회가 아니라 로스코의 작품을 보며 마음의 평온을 찿고 영혼의 안식을 느끼는 공간이다.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삶과 죽음, 깊은 회개 등을 표현한 로스코의 작품과 내부로 스며드는 빛이 대비를 이루며, 묘하게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로스코는 완성된 교회를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바람대로 사람들은 오늘도 이곳에서 그의 작품과 교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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