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한장에도 부끄럽다
연탄재 한장에도 부끄럽다
  • 김민귀 기자
  • 승인 2018.07.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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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에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시구절이 있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되새길수록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게 하는 시구절 이기도 하다.

지금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고기구이 집에서나 가끔 구경할 수 있는 연탄이다. 보일러가 나오기 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추억을 심어놓은, 훈훈한 매개체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김장철과 함께 해야할 월동준비가 하나 더 있었다. 여름 내 비어있던 연탄광에 연탄을 들여놓는 일이다. 연탄광 앞에 서서 가득 쌓인 연탄을 하나하나 세던 어머니의 얼굴에는 흐뭇함보다는 근심이 더 많이 묻어 있었다. 어머니의 근심은 연탄광을가득 채워 놓고도 일말의 풍요와 일상에 박힌 빈곤 때문 이었으리라.

집안에서 연탄불이 꺼지는 일은 크나큰 사건이었다. 그래서 마실이나 일을 나갔던 어머니도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퍼붓는 눈 속에서도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한편, 연탄 때문에 구사일생을 한 적이 있었다. 사건인즉, 어느날 네식구가 잠든 밤, 당시 너댓살 쯤의 나는 목이 마르고 어지럽다며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에게 사이다를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나 때문에 일어나려는 어머니도 갑자기 머리가 띵하고 몸이 말을 듣지 않자, 순간 연탄가스구나 싶어 간신히 옆집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때문에 우리 식구는 모두, 위험의 순간을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 연탄보다는 알몸같이 다 타버린 연탄재가 더 생각이 난다. 집집마다 집 담벼락과 붙여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네모진 쓰레기통 옆에는 연탄재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눈이 얼어 언덕길이 미끄럼 틀이 되는 날이면 그것들은 늘 진가를 발휘했다. 지금은 염화나트륨이 가차없이 눈을 파고 들어가 맨땅을 들춰내지만, 연탄재는 한때 뜨겁게 제 몸을 태우며 온기를 전하던 추억을 가지고 바닥에 부서져 내리며 찬 얼음위에 엎드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연탄한장에게도 부끄러운 때가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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