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JK, 굿바이 '드렁큰타이거'
타이거JK, 굿바이 '드렁큰타이거'
  • 뉴시스
  • 승인 2018.11.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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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래퍼 아이스 큐브(49)가 1991년 발표한 솔로 음반 '데스 서티피케이트'에 수록된 '블랙 코리아(Black Korea)'. 이 곡은 이듬해 'LA 흑인폭동'에서 한국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을 조장한 곡으로 통한다.  

당시 미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래퍼 타이거JK(44·서정권)는 반격에 나섰다. 폭동 이후 열린 힙합 페스티벌에서 '블랙 코리아'에 대응하는 '콜 미 타이거(Call Me Tiger)'를 내놓았고, 이후 힙합의 길로 들어섰다.  

"여전히 음악적으로 투쟁 중"이라는 타이거JK는 향후 활동에서 무기를 바꾸기로 했다. 자신이 이끈 힙합 프로젝트 '드렁큰 타이거' 활동에 마침표를 찍고, 제2 음악인생을 열기로 결심했다.

최근 드렁큰타이거의 마지막 앨범인 정규 10집 'X: 리버스 오브 타이거JK(Rebirth of Tiger JK)'를 발표했다. 올해로 데뷔 20년째를 맞은 드렁큰타이거의 피날레다. 타이거JK는 "힙합은 사는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 우리가 너희들 모두의 귀를 확실하게 바꿔줄게 기다려

"힙합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문화예요. 이제 의미가 많이 달라졌지만, (미국에서 힙합 문화가 태동할 당시) 시작은 그랬죠. 힙합의 길거리 브랜드가 생긴 것도 비싼 것을 입을 수 없어 만들어낸 거였어요. 싸구려 같아도 모자로 멋을 내는 방법을 생각하고. 클럽을 못 가니 놀이터에서 디제잉을 하며 놀았죠. 크레이티브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입니다." 

타이거JK는 유전자부터 음악이 박혀 있다. 그의 부친은 국내 첫 팝 칼럼니스트 서병후(1942~ 2014)이고, 어머니는 1970년대 초반 활동한 댄스그룹 '와일드캐츠' 1기 멤버 김성애다. 음악 내력은 대대로 이어진다. R&B 힙합 가수 윤미래(37)가 그의 아내다

청년 시절 혈기가 넘치던 타이거JK는 1995년 '엔터 더 타이거(Enter the Tiger)'라는 제명으로 첫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하지만 힙합 문화를 낯설어하던 당시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이후 1999년 DJ샤인(44)과 드렁큰타이거를 결성,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난 널 원해' '위대한 탄생' '하나 하면 너와 나' 등을 발표하며 한국 힙합 대중화와 역사를 이끈 팀으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2005년 DJ샤인이 탈퇴했으니 타이거JK는 같은 이름으로 활동해 왔다.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의 마지막을 일찌감치 고민해왔다고 했다.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지난해 출연한 케이블 음악채 널 엠넷의 '쇼미더머니' 시즌6다. 음악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예능적 성격도 강한 이 프로그램에 평소 TV 출연을 꺼리는 타이거JK가 등장하는 것 자체로 주목도가 높았다.  

"힙합 트렌드가 변하는 것도 좋지만, 예술에는 룰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는 착각을 해서 '쇼미더머니'에 출연했죠." 

하지만 이미 변화하는 흐름에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았다. "제가 움직이면 많은 사람이 의도를 파악해 따라올 줄 알았어요. 힙합의 사이퍼(cypher) 문화(랩을 하면서 노는 문화)가 있잖아요. 이를 통해 암호를 숨겨놓으면 많은 이가 이해할 줄 알았거든요."

타이거JK는 힙합 문화와 랩 문화는 다르다고 분명히 했다. 최근 랩만 힙합으로 부각된 것이 아쉽다는 시선이다. "최근 이렇게 바뀐 문화에 대해 복잡한 심경이 들더라고요. 표현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복잡한 한계를 인지하지 못했죠."
   
◇8:45 헤븐 :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난 당신의 최고 

2007년 발매된 드렁큰타이거 7집 '스카이 이즈 더 리미트(Sky Is The Limit)'는 자타공인 드렁큰타이거의 역작이다. 이 음반 발매 직전 타이거JK의 삶은 뒤흔들렸다. 각별하게 애정을 쏟은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척수염 투병의 힘겨운 삶도 보냈다. 

이 앨범 18번째 트랙이자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8:45 헤븐(Heaven)'은 타이거JK가 뽑은 드렁큰타이거의 최고 곡이다. "사무실 지원 없이 혼자 만들 곡이에요. 기기 렌털비와 밥값 포함해 70만원가량 들었죠. 그럼에도 '아티스트 타이거JK'로 인정받게 해준 곡이에요." 

타이거JK가 힙합 아티스트로 인정을 받는 데는 수많은 역경이 따랐다. 타이거JK는 힙합 문화를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으나 방송 등에서는 화려한 무대 의상은 어디 있느냐며 구박하기 일쑤였다. "안녕~ 하~ 세요. 타. 이. 거. JK입니··· 다" 같이 자신을 소개할 때도 랩을 하는 것처럼 과장해야 한 시절도 있었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남자기 때문에' '몬스터' 등 지금은 명곡으로 평가받는 곡들도 발매 당시 욕을 들었던 곡들이다. 하지만 타이거JK는 이 곡들이 있었기에 이번 앨범 타이틀곡 '끄덕이는 노래'처럼 하드코어한 곡들이 가능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많이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드렁큰타이거 마지막 앨범 활동은 내년 초까지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인터뷰를 연이어서 하고, 라디오에 계속 출연하는 이유에요. 더 설명할 기회를 얻고 싶어서요. 앨범을 만들고, 일주일 안에 홍보를 다 마쳐야 하는 요즘과 달리 후속곡 그리고 '삼속곡'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에 다른 수록곡까지 들려줄 수 있는 시기가 있었거든요. 요즘 시대에 안 맞게 고집을 부리는 것은 드렁큰타이거의 음악과 추억이 쿨하게 남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에요."

◇타임리스 : 잇 타임리스(it' timeless) 죽지 않는 영혼에 불타는 

타임리스(Timeless)는 처음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을 뜻한다. 이번 앨범 수록곡 제명이기도 하다. 드렁큰타이거가 앨범에 수록한 30곡 중 '힙합 원형질에 제일 가까운 곡'으로 평가한 노래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리더 겸 래퍼 RM(24)이 피처링했다. 미국 아이튠즈 힙합 차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드렁큰타이거는 요즘 좋은 래퍼들이 많다는 점은 긍정했다. 다만 힙합 문화 전반에서 '오리지널티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하나가 유행하면 다 그렇게 해요. 그러나 다르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거든요. 유행으로만 가득 찬 세상에서 클래식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죠. '타임리스', 즉 예술의 표현은 그런 것이에요."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의 마지막 앨범을 발매한 뒤 팬들의 반응에 크게 감동한다고 했다.  

"비주류인 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니 '특이한 분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분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책임감이 생겼죠. 무엇보다 '혼자라고 느낀 사람들이 (드렁큰타이거 음악)덕분에 살아갈 수 있었다'는 반응에 관해서요. 저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요. 나쁜 길에 들어설 수도 있었는데 제 음악으로 고통 속에서 멋을 찾았다고 반응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껴요. 제가 그동안 '팬이 없다' 등 겸손한 말을 쭉 해왔는데 팬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이번 만큼은 그런 말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타이거JK는 앞으로 진화하고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에 설레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분기점에 있는 드렁큰타이거의 마지막 앨범 활동은 하나의 축제로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내년 초에 전국을 도는 콘서트도 계획 중이다. "드렁큰타이거 음악을 좋아해 주신 분들을 위해 멋진 이벤트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라는 마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정기(43)가 그린 드렁큰타이거 마지막 앨범 표지는 드렁큰타이커의 얼굴과 몸에 모든 요소가 녹아들어가 있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는 온전하지 않고, 상처로 가득한 인조 다리처럼 보인다. 절룩거리면서도 힙합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온 드렁큰타이거의 여정을 상징화했다.  

"이미 알려진 드렁큰타이거라는 브랜드를 마지막이라며 묻어두는 것은 큰 모험이에요. 그런데 팬들만은 멋지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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