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한테만 사용가능한 언어, 이보다 좋은 놀이터는 없죠"
"임재범한테만 사용가능한 언어, 이보다 좋은 놀이터는 없죠"
  • 뉴시스
  • 승인 2022.07.11 0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채정은 작사가 서면 인터뷰
임재범 7집 수록곡 11곡 중 10곡 작사
'비상'으로 첫 작업…25년간 호흡
 박진희 기자 = 가수 임재범이 정규 7집 'SEVEN,(세븐 콤마)' 프롤로그곡 '위로'가 발매된 16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미디어 청음회를 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 "상처 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임재범 '비상' 중)

노랫말이 시(詩)로 비상하는 순간이 있다. 본래 시의 고향이 노래이기는 하지만, 가수와 작사가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통할 때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빚어진다.

가수 임재범의 정규 2집 '디자이어 투 플라이(Desire To Fly)'(1997)에 실린 '비상'이 좋은 보기다. 임재범은 1991년 솔로 1집을 발매한 뒤 내적 갈등으로 오랜 공백기를 보냈다. 새로운 시작을 하게끔 용기를 불어넣어준 곡이 '비상'이었다. 임재범과 채정은 작사가의 첫 협업곡이기도 했다. 그렇게 임재범과 채 작사가는 25년 동안 콤비가 됐다. '너를 위해' '고해' 등의 노랫말이 채 작사가의 작품이다.

임재범은 지난달 정규 7집 '세븐 콤마(SEVEN,)' 프롤로그 곡 '위로' 청음회에서 채 작사가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비상'도 그렇고 제 마음을 잘 읽어주시는 분"이라며 믿음을 표했다.

7년 만의 가요계 컴백곡인 '위로' 역시 채 작사가가 노랫말을 붙였다. 솔과 록을 결합한, 말 그대로 임재범 표 발라드다.

임재범은 "뛰쳐나가 밤새 뛰던 미친 밤"이라는 가사가 크게 와닿았다고 했다. "통화하는 친구도, 만나는 사람도 없어 가끔 새벽에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채 작사가가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알아줬다고 했다. 임재범과 채 작사가는 이 곡 작업을 위해 따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박진희 기자 = 가수 임재범이 정규 7집 'SEVEN,(세븐 콤마)' 프롤로그곡 '위로'가 발매된 16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미디어 청음회를 하고 있다. 

임재범의 이번 7집은 정규 앨범으로 따지면, 6집(2012) 이후 10년 만이다. 임재범의 그간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위해 채 작사가가 앨범 수록곡 11곡 중 한곡을 제외한 10곡을 작사했다. 한곡의 작사도 여러 작사가가 함께 하는 요즘 흐름과 다르다. 그 만큼 앨범 전체가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담아낼 것으로 예상된다.

임재범 7집의 모든 수록곡이 베일을 벗긴 전, 채 작사가와 서면 인터뷰했다. '제11회 서울가요대상'(2000)에서 작사가상을 받은 그녀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지난한 삶에 시적인 순간을 발굴해낸다. 좀처럼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그녀지만 "임재범 씨에게 뭐라도 힘이 되고 싶다"며 신중하게 응했다.

임재범은 오는 16일 '세븐 콤마' 1막 '집을 나서며…'를 발매한다. 채 작사가의 노랫말도 그렇게 하나 하나 노트 밖을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다음은 채 작사가와 나눈 일문일답.

-우선 '위로'에 대한 평이 너무 좋아요. 재범 씨 보컬과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에 대한 좋은 평이 많습니다. 반응 중에서 혹시 인상적이었던 게 있나요?

"혼자 방에서 생을 마감하겠다 결심하신 분이 우연히 듣게 된 '위로'를 밤새 반복해 들으시고, 자신을 공감해주는 가사에 울다 그 마음을 거두셨다는 글에 제가 너무 많이 감사했습니다. 가사보단 공감의 말을 잘 전달하신 임재범 씨 목소리의 힘이겠지요."

-이 곡의 가사는 어떤 영감을 받아쓰신 걸까요?

"임재범 씨와 저의 작업 형태는 작곡가가 보낸 가이드를 각자 듣고, 임재범씨가 감정 디자인을 한후 다시 불러 저에게 보내주시면, 그 감정을 제가 읽어 가사로 만들고, 제 가사와 임재범씨의 감성이 대사화돼 녹음을 하게 되는 과정이에요. 처음 작곡가 분이 보내신 데모곡은, 빈틈 하나없이 꽉 들어찬 악기와 멜로디에, 여러 기교로 표현한 가창이 있는 굉장히 화려한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재범 씨가 불러 보내신 가이드는 작곡가 데모와 전혀 다른, 모든 화려함을 덜어낸 담백하고 맑게 힘을 뺀, 아주 따뜻한 소리였기 때문에 저는 '위로'의 키워드를 선택했습니다. 힘든 이에게 미사어구 가득한 말들은 아무런 위로의 힘도 없고 오히려 상처를 주죠. 그래서 대놓고 '위로'라고 말하는 노래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는데, 그러다 생각해 낸 건, 나보다 더 절망의 끝을 본 누군가가, 울고 있는 내 옆에서 다 울 때까지 가만히 서 있어주는 그림이었습니다. 특별한 말이 아니어도 '너 힘든거 알아' 라는 말을, 힘든 인생을 경험한 임재범 씨 목소리로 공감해 준다면 상처를 치유받진 못해도 외로움은 잠시 덜어줄수 있지 않을까라 생각했죠. 불꺼진 방에서 혼자 울다 이노래를 듣는 4분여 동안 만이라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는 따뜻함이 전달돼 덜 외로우시길 진심 바라면서요. 그건 임재범씨가 팬들에게 드리는 안부인사 같았으면 했어요."

-재범 씨가 '뛰쳐나가 밤새 뛰던 미친 밤'을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로 꼽았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쓰시게 된 걸까요?

"사람들을 향한 위로이긴 하나 이곡에 '위로'란 주제를 넣은 제일 큰 이유는, 임재범 씨 같은 고단한 삶의 경험자가 말하는 위로의 말이여야 가사로서의 힘이 있을 거란 생각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을 공감하기 위해 2절에서는 '나도 너처럼 그랬었다'는 본인 얘기를 해야했죠. 사실은 '가슴속 불덩이가 자던 숨을 짖누르면 뛰쳐나가 밤새 뛰던 미친 밤' 이 한줄을 말하려고 나머지 가사를 쓴 거 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 부르시며 임재범 씨 속의 슬픔도 토해내고 작은 위로도 받으시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이 있었죠. 임재범씨가 제 응원을 들으셨나 봅니다."

-임재범 씨 7집에 실리는 11곡 중 10곡에 참여를 하셨습니다. 요즘 같이 1곡도 여러 작사가가 쪼개서 참여하는 것과는 정말 대조적인데요. '위로'를 포함해 10곡이 유기적인 짜임새가 있다고 재범 씨 소속사가 전했는데 10곡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서사인가요? 아니면 각자의 기승전결을 갖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이번 재범 씨 7집에서 풍기는 공통적인 정서를 각각 대변하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앨범은 여러 면에서 제게 특별한 작업입니다. 7년 만에 세상에 나오는 임재범 씨의 감정을 조금은 단계별로 나눠서 무대위로 자연스럽고 덜 부담스럽게 오르게 하는 작업을 하려 노력했어요. 세월에 숙성된 사람의 감정들은 한걸음 물러서 있기에 참 깊고 아름답죠. 그래서 10곡 안에 7년 세월과 함께 더 세밀하게 깊어진 임재범 씨 목소리에 맞는, 삶을 보는 다양한 각도의 촘촘한 시선과 이야기들을 담겠다는 주제로 앨범의 가사 디자인을 시작했고, 반 정도의 곡은 그려놓은 가사 주제에 어울리는 곡을 찾아 고르는, 특이한 형태의 음악 작업도 있었습니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질문 하신것처럼 서로 긴밀 하게 연결됐다고 정의하기 보단, 감정의 다양성을 한 앨범에 풀어 넣었고 그 안에 하나로 연결해 흐르고 있는 맥이 있습니다. 사실 첫 감정이 시작되는 곡은 '홈리스(Homeless)'라는 곡인데, 제가 정해논 주제에 어울리는 곡을 찾아내야 했어서 헤매던 중, 우아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드는 클래식 기반의 작곡팀 '뉴아더스'(이치훈·김동현)분들을 찾아 여러곡을 부탁 드렸죠. 제가 많이 고생하시게 했습니다. 이 곡이 7집 앨범 작업의 첫 시작이었고 전체 가사의 베이스가 되는 곡이라 이 가사의 분위기가 모든 곡에 깔려 흐르고 있는 느낌이죠. 임재범 씨의 첫 녹음 곡이기도 하고요. 1막 음원 공개에서 들어보실수 있습니다. 전곡을 앨범으로 들으실 때 '홈리스(Homeless)'를 제일 먼저 듣고 나머지 곡을 들으시면 전체 앨범의 가사 디자인을 더 많이 느끼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재범 씨랑은 따로 노랫말을 두고 말씀을 나누지 않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이전에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재범 씨의 상황들을 노랫말에 잘 녹여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재범 씨가 '비상'이 그런 경우였다고 이야기를 하셨고요. 노랫말을 쓰실 때 임재범 씨를 비롯해 부를 가수에 대해 많이 알아보시고 글을 쓰시나요? 가수에게 많은 영감을 받으시는 편입니까? 아니면 특정 상황들을 상상하시면서 쓰시나요?

"곡마다 가수마다 다 다릅니다. 특정 상황을 상상해서 쓰기도 하고, 가수에 대해 알아보고 쓰기도 하고, 하지만 많은 경우의 제 작업방식을 말씀드리면, 저는 그 노래를 부를 사람이 제일 중요한 작사가인지라 가능하면 가수의 내면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보통은 가수가 직접 부른 가이드에 많은 것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작곡가 가이드곡이 아닌 가수 목소리로 만들어진 가이드 녹음은 반드시 부탁드리죠. 제가 만든 옷을 입고 쇼에 나갈 모델의 몸 컨디션도 모른 채 플라스틱 마네킹에 피팅만 하고 있는건 제 역량으론 잘 해내질 못합니다. 그래서 작품도 많이 못하죠."
 
-이번엔 임재범 씨의 특정 부분에서 영감을 얻으신 게 있나요?

"임재범씨와의 작업에서 영감이라는건 언제나 그분의 특별한 목소리 하나입니다. 그 당시 감정 상태에 따라서 목소리 굵기와 톤, 호흡 ,발성등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그걸 잘 알아듣고 말로 옮기는게 제 일인 거죠. 한곡 안에서도 엄청나게 다양한 소리를 내시는데 사실 이부분이 다른 가수와 특별히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가이드 안에 이미 언어로 다 담아내기 힘든 천재성 다분한 감정의 표현들이 들어있으니 영감은 넘쳐나죠. 대중 분들이 임재범씨 마음을 어떻게 잘 읽는거냐고 물으시는데, 그건 아마도 생각과 목소리 표현이 일치하는 가수이시라, 연기 함이 없이 본인을 그대로 담아서 불러주시니 저는 그저 그 소리를 잘 읽어 쓰고, 그게 임재범씨의 진짜 생각과 가까운 말이 되는 거 같아요."

-정말 오랜 기간 재범씨랑 작업을 해오셨습니다. 재범 씨랑 첫 작사 작업한 건 무엇이고 그때 재범 씨의 인상은 어땠습니까? 지금까지 재범 씨와 같이 호흡을 맞춰 오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작업은 2집 '비상'이었습니다. 오래 작업할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의 분야를 온전히 믿는 존중일 거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임재범 씨가 제 가사를 온전히 믿어주셔서 제가 무슨 말을 써도 한마디 불만없이 존중해 주시고, 그 가사를 제가 상상한 그림보다 항상 더 놀랍게 잘 표현해주시니, 저는 가창력에 고민없이 그저 쓰고 싶은 단어 마음껏 사용하며 창작할 수 있는 행복이 있죠. 다른 가수에겐 쓸 수 없는 임재범한테만 사용 가능한 언어들이 있으니, 작사가에겐 이보다 좋은 놀이터는 없습니다."

-작사가와 가수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관계라는 걸 정의할 수 있는 사이일까요?

"작사가와 가수의 관계까지는 제가 아직 모르겠고, 작사라는 건 작곡가의 곡과 가수의 목소리를 붙여주는 접착제의 역할이 있다 생각합니다. 무형의 음과 목소리를 직설적 표현법인 언어로 바꿔 놓아야하니까요. 그 대사를 말할 사람은 가수이니, 말할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언어 표현을 찾아, 가수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을 왜곡되지 않고 투명하게 전달해 내도록, 분명한 색과 모양으로 색칠하고 포장해주는 일이 작사가의 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