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의대들 수업재개 시작…유급에 국시까지 '벼랑 끝' 왔다
오늘부터 의대들 수업재개 시작…유급에 국시까지 '벼랑 끝' 왔다
  • 뉴시스
  • 승인 2024.04.0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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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경북대 의대, 집단행동 8주차인 오늘 수업재개
의평원 인증 기준상 의대 실습 52주 이상 확보 필수
더 미룰 시 학사 파행에 따른 책임을 대학이 덮어써
의대생들 복귀할까…의정갈등 분위기 때문에 회의적
온라인 수업에 온라인 출석까지…수업 질 '악화일로'
이무열 기자 = 지난달 20일 대구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이 비어 있다.

김정현 기자 = 대학들이 의대 수업을 8일부터 재개하기 시작한 배경은 집단 수업 거부에 대응한 '버티기'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수업을 더 미루면 학생들이 집단 유급에 처하고, 본과 4학년은 졸업을 하지 못해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 코 앞에 와 있다는 게 대학가 반응이다.

이날부터 의대생들이 얼마나 수업에 복귀하는지에 성패가 달려 있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더 많아 보인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결국 학생들의 피해만 누적되는 만큼 속히 의정갈등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대학가와 의료계에 따르면 경북대와 전북대는 이날부터 의대생들의 '의과대학 증원 반대' 집단행동으로 차질을 빚고 있던 의대 수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집단행동은 2월20일 시작 이후 8주차에 접어들고 있다.

다른 대학들도 뒤따를 예정이다. 가톨릭대와 가톨릭관동대는 오는 15일, 강원대는 22일에 의대 수업을 각각 시작하고 중앙대는 다음달 1일을 재개 날짜로 정했다.

대학들이 의대 수업을 재개하기 시작하고 의대생들이 출석을 거부하면 출석일수 미달로 특정 과목에서 낙제(F)를 받아 유급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유급은 등록금을 돌려 받을 수 없다. 그동안 대학들이 휴강과 개강 연기를 이어왔던 이유도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당초 계획했던 수업일수와 의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 요건 등을 고려하면 더는 수업을 미룰 수 없다는 게 대학들의 반응이다. '마지노선'에 와 있다는 이야기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학의 수업일수를 연간 최소 30주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의대는 이보다 더 길다. 본과 3~4학년 임상실습 기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 등에 따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의학교육 평가인증'을 얻지 못한 의대는 졸업생이 의사 국가고시를 치를 수 없다. 의학교육 평가인증 상 임상실습 기간은 총 52주, 주당 36시간 이상이어야 한다.

한 예로 경북대는 본과 3학년에 40주, 본과 4학년에 16주 등 56주의 임상실습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집단행동의 여파로 다시 세운 학사 일정에 따라 본과 3학년에게 올해 실습을 위해 남은 시간은 30주 뿐이다. 대신 경북대 의대는 수업을 9시간으로 늘려 38주차에 해당하는 시수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일각에선 의대생들을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압박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시책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는 뒷말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날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대학이 교육부에 교육여건 확충을 위한 재정 지원 수요 신청을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국립대 사정을 잘 아는 한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에 적극 협조하면 (의대 증원에 따른 재정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게 은연중에 암시된다"며 "의대생과 교수들을 은연 중에 압박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수업을 재개하는 것 만으로는 의대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개강을 단행하는 대학 관계자들조차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전공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대화 물꼬를 텄지만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홍효식 기자 = 지난 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특히 대학들이 의대 수업을 재개하는 것을 다른 의도가 깔려 있다고만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학 입장에서도 '고육지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을 보호하기 위해 수업을 미룰 수 있었지만, 이대로 방치한 채 시간을 보내면 자칫 집단 유급의 책임이 대학에게 돌아갈 시기가 됐기 때문이다. 수업을 진행하지 않아 의평원에서 정한 인증기준에 미달하는 일은 대학에선 막아야 한다.

때문에 대학들은 온라인 쌍방향 수업은 물론 화상 녹화수업, 급기야 자료를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은 기록만 남아 있으면 출석까지 인정하겠다는 태세다. 교육부도 온라인 수업 운영을 허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들은 온라인 수업에 아픈 기억이 있다. 코로나19 당시 교육부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개강을 권고한 이후, 학생들은 등록금 환불 운동을 펼쳤고 급기야 집단소송까지 이어졌다. 이후 교육부는 대학 내에 학생이 참여하는 '원격수업관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질 관리에 나서도록 제도를 손질한 바 있다.

경북대 관계자는 "학장이나 병원장, 그리고 총장의 의무는 의대생들이 교육 현장에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라며 "학생 일부만 데리고 가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고 한 명이라도 피해를 봐선 안된다"고 털어놨다.

대학 현장에선 정부에 대한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의정갈등이 풀려야 실마리가 찾아지는데 사회부총리 부처인 교육부는 존재감도 협상력도 보이지 못했다. 의대생들도 이주호 부총리의 대화 제안을 거부했다.

비록 의대 수업이 재개돼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사태가 장기화되면 피해는 학생들이 입게 된다. 수업에 복귀하지 않는 학생들은 의사가 될 시간이 늦어지게 되고, 수업을 받고 있거나 복귀한 학생들은 온라인 등 질적으로 낮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국립대 총장은 "의료계에선 총장들을 일컬어 정부의 사냥개라고 칭하는데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라며 "정부가 의료계와 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교육부 측은 "이날 수업 재개에 나선 의대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복귀할 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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