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영화 '나랏말싸미'는 허구, 그러나 역사왜곡은 아니다?
[초점]영화 '나랏말싸미'는 허구, 그러나 역사왜곡은 아니다?
  • 뉴시스
  • 승인 2019.07.3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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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랏말싸미'의 조철현(60) 감독이 역사왜곡 논란을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의 내용은 '허구'라고 지적했다. 

세종국어문화원 김슬옹 원장은 "영화는 예술 장르기 때문에 역사 왜곡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적 사실과 다른 건 분명하다. 한글 창제는 세종이 주도한 건데 신미 대사가 주도한 걸로 보이더라. 그런 부분이 아쉽다. 전문 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신미대사가 도운 기록은 없다. 혹 도움을 줬다 하더라도 세종이 주도한 걸 넘어설 수는 없다. (세종과 같은) 절대 권력과 천재적인 학문적 경지가 없으면 주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여주대 세종리더십 연구소장 박현모 교수는 "세종은 문자 창제를 위해 기존의 해외 문자들을 수집하고 방언도 수집을 했을 것이다. 세종이 이 모든 것을 집대성해 한글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미대사가 만들었다는 것은 지나친 거다. 실록에 세종이 직접 창조했다는 게 있지 않나. 사실관계에서 논란이 벌어지면 제대로 밝혀져야 할 문제"라고 짚었다.

앞서 조철현 감독은 29일 "조선왕조실록에 1443년 12월30일 임금이 친히 새 문자를 만들었다는 기록 이전에 아무것도 없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의 역사적 공백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신미는 그 공백을 활용한 드라마 전개에서 세종대왕의 상대역으로 도입된 캐릭터다. 이 과정에서 신미는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다. 신미가 범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능통했고 대장경을 깊이 공부했다고 언급한 실록 기사들까지 감안하면 1443년 12월 이전의 역사 공백을 개연성 있는 영화적 서사로 드라마화할 만한 근거는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는 것은 허구다. 세종의 아들인 문종의 증언에 따르면, 세종이 신미라는 이름을 들은 해는 1446년, 접견한 해는 1450년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왜곡하지 않고 훈민정음 창제에 신미가 끼어들기란 불가능하다. 기록이 없다 할지라도 신미대사가 한글을 만들었다는 설은 말이 안 된다.  

조선왕조실록 문종 즉위년 경오(1450) 4월6일(기묘) 기록에는, "임금이 영의정 하연, 좌의정 황보인, 우의정 남지, 좌찬성 박종우, 우찬성 김종서, 좌참찬 정분, 우참찬 정갑손을 불러 도승지 이사철에게 명령해 의논케 하기를, '대행왕(大行王; 세종대왕)께서 병인년(1446; 훈민정음 반포년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 금년(1450)에는 효령대군의 사제(私第)로 옮겨 거처해 정근(精勤)할 때 불러 보시고 우대하신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라고 적혀있다.

이와 관련해 김슬옹 원장은 "신미대사가 아무리 산스크리트어에 능했다고 하더라도 오해의 여지가 있다.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훈민정음을 비교해 보라. 훈민정음은 점과 직선, 동그라미로만 돼있다. 산스크리트어는 곡선이 많다. 차원이 다르다. 산스크리트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기원을 알 수 없다. 이에 반해 한글은 발음기관을 모방했다든가 삼재(우주의 근원인 하늘과 땅, 인간)에서 따왔다든가 하는 근거가 확실하다. 문자는 자음과 모음의 짜임새가 중요한데, 그런 걸 고려했을 때 산스크리트어 모방설은 말이 안 된다. 참고했을 수는 있으나 모방 수준은 아니다"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영화라는 창작물로서 '나랏말싸미'의 가치는 존중하며, 현재의 논란은 과한 면이 있다고 봤다. 박현모 교수는 "기본적으로 역사 해석이 역사학자들의 전유물이라든가, 실록과 실록이 침묵하고 있는 대목에 대한 해석을 가로 막는 건 아쉽다고 생각한다. 영화 설정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다큐멘터리라면 다른 차원이지만, 영화기 때문에 지금의 반응은 과한 면이 없지 않다. 예술로서 보자면, 이걸로 (한글 창제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다음에 또 다른 버전이 나오는 등 열려 있는 구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라는 견해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조목조목 비판하는 건 역사학자의 몫이다. 그 당시 유교사회를 극적 재미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도 있지 않을까. 영화적 허용, 예술적 허용 범위 내에서 상상력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창제가 쉽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건 다 알고 있지 않나. 기존에 정사 역사에서 못다한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대중인 관객의 몫이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달리 대중은 '나랏말싸미'의 역사 왜곡을  연일 성토하고 있다.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나랏말싸미 상영 및 해외보급 금지 가처분 신청'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급속도로 호응이 잇따르고 있다.

게시자는 "현재 인기리에 상영중인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과정을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는 역사적 근거가 매우 빈약한 스님이 한글창제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을 강조, 세종대왕을 무능한 왕으로 그리고 있다"며 "물론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보호돼야 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헌재의 판결에도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아무리 새로운 관점을 예술에 적용하더라도 그것이 설득력 있는 논거에 바탕을 둔 것인지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은 공감은 물론 지지를 보내기도 힘들다. 감독의 관점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예술적 성과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관객에게는 그것이 낯설고 심지어 역사 왜곡이라는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다만 역사 왜곡이냐라는 단순한 진실 공방보다, 제작진이 제시하는 영화적 세계가 과연 이 시대 대중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고 공감을 일으키는가가 영화 평가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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