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디미트리오스의 가면ㆍ에릭 앰블러, 오늘의 엄마ㆍ강진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ㆍ이원하
[새 책] 디미트리오스의 가면ㆍ에릭 앰블러, 오늘의 엄마ㆍ강진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ㆍ이원하
  • 이은영 기자
  • 승인 2020.04.17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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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의 가면』은 현대 스파이 소설의 아버지 에릭 앰블러의 대표작이자 '스파이 소설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 영국의 추리 소설가인 주인공 래티머가 어느 날 터키에서 시체로 발견된 악명 높은 국제적 범죄자이자 스파이 디미트리오스라는 인물에게 흥미를 갖게 되고, 유럽 곳곳을 오가며 그의 현란한 범죄 인생을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체를 숨긴 채 유럽 각국의 온갖 범죄에 관여해 온 수수께끼의 악당 디미트리오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서서히 드러나는 놀라운 사실들, 반전과 서스펜스를 거듭하는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 드리운 충격적인 '악'의 실체를 파헤치는 작품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영국에서는 스파이 소설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내렸지만, 당시 작품들의 수준은 대체로 그리 좋지 못했다. 독일이 패하면서 영국의 스파이 소설들은 작품 속에 등장시킬 적국을 잃었고, 1930년대 후반에는 그저 그런 삼류 소설 장르가 되어 갔다. 하지만 작가를 꿈꾸던 앰블러는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보고 스파이 소설 집필에 몰두했고, 대표작 『디미트리오스의 가면』으로 스파이 스릴러 장르에 큰 획을 그으며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앰블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영국, 독일, 프랑스가 전쟁을 선포하던 그 주에 『데일리 메일』이 뽑는 이달의 책에 선정'되었고, '살아 있는 최고의 스릴러 작가'(『런던 뉴스 크로니클』)라는 칭송을 듣게 해주었다. 이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 재미와 리얼리티,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입체성, 호기심과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키는 소설적 장치 등은 오늘날까지 이 작품은 많은 이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424쪽, 열린책들, 13,800원

 

 

△『오늘의 엄마』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장 낯선 이별을 이해하려는 어리고 늦된 스물아홉 살의 서툰 간병기로 주인공 ‘정아’가 겪는 상실의 시간을 기록한 소설이다. 3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애인을 잃은 정아는 여전히 그 기억에 몰두해 살고 있다. 그러던 중 언니에게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직 그의 죽음조차 납득하지 못한 정아가 이십 대의 마지막 해에 받아든 역할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엄마의 보호자다. 똑부러지고 야무진 언니 정미와 세상일에 늦되고 어색한 정아. 두 자매의 서울과 부산, 경주를 오가는 간병기가 시작된다. 이별만큼 필연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걸 잘해 내는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인 우리에게 이 책은 동행이 되어 준다. 다만 앞서 가는 길잡이도, 뒤에서 받쳐 주는 안전요원도 아니다. 그저 매번 겪는 이별에 매번 리셋되는, 그러면서도 온몸으로 그것을 겪어 내는 우리의 현실 친구다. 병든 엄마 곁을 지키며 정아가 보여 주는 유치한 투정, 짜증과 무심에서 우리는 그 이면의 마음을 느낀다.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사랑, 어쩔 수 없이 생생한 최선을. 김초엽 소설가의 추천의 말처럼 “사랑은 언제나 상실의 고통을 가져온다. 『오늘의 엄마』는 끈질기게 그 사랑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292쪽, 민음사, 14,000원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는 혜성처럼 등장하여 독보적 재능과 독특한 이력을 뽐내는 이원하 시인의 첫 시집이다.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당선된 작가는 당선 직후 문단과 평단, 출판 관계자와 독자들의 입에 제법 오르내리며 화제가 되었다. 국어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나오지 않았고, 미용고를 졸업해 미용실 스태프로 일하고, 영화 〈아가씨〉에 뒷모습이 살짝 등장하는 보조 연기자로 살아온 작가의 이력도 특이하지만 이십대 중반, 늦다면 늦은 때에 문학을 만나 시를 쓰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갔다. 54편의 새로운 시가 담긴 이 책은 펼치면 차례 페이지부터 신선하다. 4부로 나뉜 구성에 각각의 부제목이 ‘새’ ‘싹’ ‘눈’ ‘물’이다. 한 음절로 된 단어들인 동시에 ‘새싹’과 ‘눈물’로 읽어도, ‘새싹눈물’로 읽어도 각각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는 짤막한 부제목 아래 다소 긴 편인 시의 제목들.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풀밭에 서면 마치 내게 밑줄이 그어진 것 같죠’ ‘털어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나를 받아줄 품은 내 품뿐이라 울기에 시시해요’ ‘서운한 감정은 잠시라도 졸거나 쉬지 않네요’ 등등의 제목은 글인 동시에 말 같고, 혼잣말인 듯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인 듯하다. '바람은 차갑거나 뜨겁고/ 나무는 키가 작거나 크고/ 한 시절은 머물거나 건너가며/ 말 한마디는 사람을 달래거나 그 반대인데/ 너는 하나예요'(책 내용 중). 160쪽, 문학동네,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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