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왕년의 운동 스타들은 왜 '예능 선수'가 됐나
[초점]왕년의 운동 스타들은 왜 '예능 선수'가 됐나
  • 뉴시스
  • 승인 2021.06.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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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경 인턴 기자 = 최근 TV 예능 프로는 스포츠 스타들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한국 스포츠를 대표했던 '왕년의 스타' 운동 선수들이 경기장이 아닌 방송활동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씨름선수 강호동·이만기를 이어 농구의 전설 허재, 서장훈, 현주엽 뿐만 아니라 축구 미남 스타 안정환, 이동국,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을 비롯해 골프 여제 박세리까지 방송가를 누비고 있다.

선수들이 '예능 선수'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스포츠 스타들에게 방송활동은 새로운 도전이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호기심으로 방송에 출연했다가 방송계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이미지 개선 효과가 주는 장점을 빼놓을 수 없다. 서장훈, 안정환, 김동현 등은 예능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중적으로 친근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서장훈은 지난 2015년 방송 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선수 시절 '싸움닭'으로 알려진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로 잡고 싶다는 뜻이었다.

선수 시절 '꽃미남 스타'로 신비주의 이미지가 강했던 안정환 역시 각종 예능에 출연해 친근한 아빠 모습을 보여주며 따뜻한 인간미로 공감대를 자아냈다. '파이터'로서의 이미지가 강렬했던 김동현 또한 예능에서 허당끼 넘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줬다.

과거에는 스포츠 스타들의 연예계 활동을 '일탈'로 규정하며 좋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많았다. '하라는 운동은 안하고 연예인들과 논다'는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았던 것.

그동안 최홍만 등 몇몇 스포츠 스타들이 이런 선입견으로 예능계에서 반짝하다 자취를 감췄다. 2010년대 중반까지 일회성 출연에 그치지 않고 스포츠 스타에서 예능인 변신에 성공한 사례는, 강호동 정도를 제외하면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스포츠 스타들의 방송 출연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이제 대중들은 숨겨진 재능과 인간적인 매력를 드러내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호응하고 있다. 또 선수 시절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은 '돌싱남' 서장훈, '리환 아빠' 안정환, '맏언니' 박세리의 모습에 신선함과 친밀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존 예능인들의 모습이 식상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의 인물들이 부각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스포츠 스타들이 그 틈을 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스타급 연예인 한명이 다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대중들이 받는 피로감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스포츠 스타중 예능 문을 연 시초는 누구일까.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 합성어) 전성시대'를 연 건 강호동이다. 1980년 씨름판을 호령했던 강호동은 은퇴 후 지도자 연수를 준비하다 코미디언 이경규의 추천으로 개그맨으로 전업했다.

강호동은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입사하여 남다른 체형(몸무게 125㎏)을 앞세운 바보 연기와 유행어 '행님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공포의 쿵쿵따', '무릎팍도사', '1박2일'에서 맹활약하며 '국민 MC'로 발돋움했다.

천하장사 출신답게 파이팅 넘치는 진행 능력과 탁월한 예능감으로 스포츠 선수로는 최초로 '예능계 최정상'(방송 3사 연예대상 수상)에 올랐다.

농구 선수 출신 서장훈은 강호동의 스포테이너 전성시대를 이은 인물이다. 서장훈은 2013년 은퇴 후 '무한도전' 게스트 출연을 시작으로 '썰전', '세바퀴' 등에 출연해 예능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현재 '미운 우리새끼', '무엇이든 물어보살', '볼빨간 신선놀음' 등 각종 예능에서 MC 자리를 꿰차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방송인 서장훈은 선수시절과는 다른 반전 매력을 뽐낸다. 농구 코트에서 상대 선수를 거칠게 밀어붙이던 '국보급 센터' 서장훈의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체구(205㎝·110㎏)에 어울리지 않게 상대방 말 한마디에 삐치고 투덜거리는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신동엽, 이수근 등 베테랑 예능인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입담은 그가 가진 강점이다.

축구선수 출신 안정환도 예능대세 중 한명이다. 안정환은 2014년 방송된 '아빠, 어디가'에서 아들 안리환과 함께 여행을 떠나며 진솔한 모습과 입담으로 선수 시절 '테리우스 이미지'와는 또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위캔게임'이나 '뭉쳐야 찬다', '안싸우면 다행이야', '전국방방쿡쿡' 등을 통하여 무뚝뚝하지만 털털하고 또 투덜대면서도 한편으론 구수한 다중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이밖에도 '노는 언니'의 골프스타 박세리, 펜싱스타 남현희, 배구스타 한유미, '맘 편한 카페 2'의 축구스타 이동국 등도 방송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들이다.

하지만 최근 몇몇 스포츠스타들이 프로그램마다 비슷한 캐릭터만 보여주고 있는 점은 아쉽다. 농구스타 허재는 '뭉쳐야 쏜다' 등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의미없는 '버럭 캐릭터'만 고수하고 있다.

현주엽 역시 '당나귀귀'를 비롯한 프로그램에서 매번 비슷한 먹방을 보여주고 있어 시청자들의 피로감을 사고 있다. 별다른 노력없이 한때 유행 이미지에만 의존하는 모습으로는 예능계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참신한 소재가 부족한 예능계에서 당분간 스포츠스타들에 대한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앞으론 스포츠 분야 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인물들도 예능계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많이 등장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제 스포츠 스타들의 예능 출연은 더 이상 낮선 모습이 아니라 일상화가 됐다"라며 "스포츠 선수들의 방송 진출은 전문 예능인들만 예능을 하는 시대가 깨졌다는 신호탄이며, 앞으로 스포츠 스타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예능에 출연해 활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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