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소액주주운동에 이어…'경쟁사 주주제안'까지 등장
행동주의·소액주주운동에 이어…'경쟁사 주주제안'까지 등장
  • 뉴시스
  • 승인 2023.03.0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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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보안 업계 1위 '슈프리마', 경쟁사 유니온커뮤니티에 감사선임 제안
행동주의 편에 섰던 '비사이드' 플랫폼, 이번엔 회사 경영진에 '손'
"소액주주 위한 상법, 기업사냥 악용 우려"

우연수 기자 = 행동주의 펀드 소액주주 등 주주 활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가운데, 업계 1위 중견업체가 중소형 경쟁사에 감사 선임 주주제안을 보내는 일까지 발생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지문 보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1·2위 업체 슈프리마와 유니온커뮤니티의 사례다. 주주로 들어간 경쟁사가 주주 제안을 통해 경영에 개입하는 사례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와 회계업계 등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나,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6일 행동주의 플랫폼 비사이드 코리아에 따르면 지문보안 업체 유니온커뮤니티는 지난달 28일부터 동종업계 경쟁사인 슈프리마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비사이드와 손잡고 소액주주 캠페인을 개시했다. 그간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측에 서서 SM엔터테인먼트, 은행, BYC, KT&G 등을 상대로 주주 캠페인을 지원했던 비사이드가 회사 경영진 편에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쟁사의 감사 후보 추천…회사 "영업기밀 유출 등 이해상충 우려"

슈프리마 관계사 3사(슈프리마·슈프리마에이치큐·슈프리마아이디)는 중소형 경쟁업체인 유니온커뮤니티 주식을 지난 2021년부터 취득해 현재 8.3%까지 지분을 확보했다. 슈프리마에이치큐와 유니온커뮤니티는 지문인식 등 국내 바이오인식 및 보안 솔루션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 지분을 바탕으로 슈프리마 관계자는 유니온커뮤니티에 회사에 장승수 변호사를 감사 후보로 제안했다. 상법상 1% 이상 지분을 소유한 주주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두 회사는 오는 15일 정기 주총까지 소액주주 의결권울 확보해 표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감사·이사 선임은 소수 주주들이 최대주주를 견제하기 위해 꺼내는 대표적인 카드 중 하나다. 최대주주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는, 독립적 감사의 존재는 경영진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거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견제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총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의 감사·이사 선임 제안이 빗발치는 이유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를 에스엠과 SBS에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추천한 바 있으며,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도 3월 주총을 앞두고 KT&G를 상대로 이사 선임을 제안했다. 이 밖에 광주신세계, BYC, 한국철강 등이 소액주주 또는 행동주의 펀드가 제안한 감사위원 선임 건을 주총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다만 주주로 들어간 동종업계 경쟁사가 감사·이사 선임을 제안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명분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가령 경쟁사에 유리한 의사결정을 방해하거나 자기 회사에 이익이 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감사의 막강한 권한을 회사 영업기밀 유출에 악용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감사는 이사회 참석, 영업 보고 요구권, 업무 조사권 등 권한을 갖고 있어 고객 및 영업 정보, 신규 사업 정보, 신규 고객 발굴 정보 등에 접근이 가능하다.

◆"1위 기업이 사들이면 좋은 거 아냐?"…소액주주운동 표방 적대적 인수 우려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1위 기업에 사들여지는 것이 유리한 것 아니냐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 방식이 일반적인 인수 과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주 가치 하락 우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기업 인수합병(M&A)은 주식 양수도 계약에 따라 최대주주의 지분을 취득하거나, 공개매수 방식으로 소액주주 지분을 사들이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경우 장기적인 시너지 등 효과에 따라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고, 단기적으로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주가가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소액주주를 설득할 명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정당한 방식으로 기업 인수에 나선다면 모를까, 주주제안권을 활용해 슈프리마 측 감사를 세우는 건 경쟁사 고사시키기 등 악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며 "지분 확보를 통한 시너지 창출 케이스도 있으나, 슈프리마와 유니온커뮤니티는 사업 내용과 고객층이 거의 동일한 회사"라고 설명했다.

독과점 심사를 회피한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동종업계 경쟁사 지분을 15% 이상 확보하게 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하지만, 슈프리마는 유니온커뮤니티 지분 8.6%를 이용해 경영에 개입하고 있다.

실제 독과점 심사가 진행된다면, 슈프리마와 유니온커뮤니티는 사실상 국내 시장을 과점하고 있어 심사 통과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 역시 에스엠 지분을 15% 이상 확보하면 기업 심사를 거쳐야 하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도 조건부 승인만 받았을 정도로 독과점 심사는 까다로운 편이다. 경쟁을 통해 가격과 품질이 유지되던 시장이 독점 시장으로 가게 될 경우 소비자와 사회적 편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니온커뮤니티 관계자는 "슈프리마의 감사 선임 시도가 성공할 경우 소액주주 운동으로 포장,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단기 차익을 노리는 외국계 자본의 국내 기업 사냥, 현금 동원 능력 등 시장 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경쟁 중소기업 약탈 등의 전형적인 사례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호소했다. 상장사 유관 기관 관계자는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3%룰이 생겨난 이후 자본력 있는 경쟁사 또는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을 수 있단 우려가 제기돼왔는데,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라고 바라봤다.

한편 슈프리마 측에서는 민감 정보 유출 등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슈프리마에이치큐 관계자는 "1년 이상 주주로 있는데 주가가 계속 지지부진하다보니 주주로서 당연한 권리 행사를 한 것"이라며 "유니온커뮤니티는 9년째 동일 인물을 감사로 선임하고 있어 경영 활동 감사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 "객관적으로 유니온커뮤니티 감사로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감사를 이용한 정보 빼내기 등은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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