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천거할 때는
사람을 천거할 때는
  • 오진원 논설위원
  • 승인 2019.06.27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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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의 평공이 기황양에게 물었다. "남양현에 현령 자리가 비었소. 당신이 보기에 누가 이 자리를 맡을 만하오?"

기황량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해호라면 잘해낼 것입니다."

평공이 놀라서 물었다. "해호는 당신의 원수가 아니오?"

기황양이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누가 적임자인지 물으신 것이지 제 원수가 누구인가를 물으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진평공은 해호를 남양 현령으로 삼았다. 해호는 백성을 열심히 가르치고 격려하여 폐정을 단번에 없앴으므로 대단히 칭송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진평공이 또 기황양에게 물었다. "조정에 법관 자리가 비었소. 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시오?"

기황양이 대답했다. "기오라면 잘해낼 것입니다."

평공은 이상해서 물었다."그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당신이 그를 추천하다니 두고두고 남의 이야깃거리가 될까 걱정이오"

기황양이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누가 법관을 맡을 만한가를 물으신 것이지 기오가 제 아들인가를 물으신 게 아닙니다."

법관이 된 기오는 신중하게 법을 집행하여 해로움을 제거하고 이익을 주었으므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그래, 기황양이 인재를 천거할 때에는 밖으로는 자기 원수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기 자식도 꺼리지 않았으니 정말로 공평무사하구나."

◆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언제 어느 때나 통하는 말인 듯하다. 기황양은 공적인 대의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유능한 사람이라면 원수도 가리지 않고 아들도 개의치 않았다. 원수를 천거하면 남들은 의심할지 모르지만 공익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떳떳하다.

전근대 사회일수록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사적인 인간관계에 얽매여 앞에서 끌어 주고 뒤에서 밀며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려고 한다. 전제 군주 국가에도 기황양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상피 제도가 있었다. 가까운 친족 사이는 같은 관청이나 부서, 관직에 같이 임명하지 않는 제도이다. 또 연고가 있는 곳에 관리로 파견하지도 않았다. 이 제도는 인정에 의해 권력이 집중되거나 공권력의 기능이 문란해지는 것을 막아 관료 체계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런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왕조 사회에서도 권력의 독점과 전횡을 막고 견제를 하여 정치의 객관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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