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살아나는 이름...신해철·유재하·김현식
찬바람이 불면 살아나는 이름...신해철·유재하·김현식
  • 뉴시스
  • 승인 2020.10.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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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10월27일 6주기
유재하·김현식, 11월1일 33·30주기
코로나19 여파로 올해는 랜선 추모
신해철. 2020.10.27. (사진 = KCA엔터테인먼트 제공)
신해철. 2020.10.27. (사진 = KCA엔터테인먼트 제공)

신해철(1968~2014), 유재하(1962~1987), 김현식(1958~1990)….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음악과 그리움을 남기고 떠난 뮤지션들의 이름을 부른다.

매년 이맘때면 오프라인에서 이들을 기리기 위해 크고 작은 추모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위주로 이들을 기억한다.  

27일은 신해철의 6주기다.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로 우승하면서 데뷔했다. 재작년이 데뷔 30주년이었다. 가수 서태지가 존경심을 표한 신해철은 앞서가는 뮤지션이었다. 서태지는 1990년대 초반 신해철에게 샘플러 사용법을 배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해철이 이끈 밴드 '넥스트'의 음악에서 보듯 신해철의 음악기반은 록이지만 신시사이저나 미디 등 최신장비를 음악에 적극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싱어송라이터 윤상과 함께 만든 프로젝트 그룹 '노 댄스'를 비롯해 솔로앨범 '크롬스 테크노 웍스'와 '모노롬', 또 다른 프로젝트 그룹 '비트겐슈타인' 등을 통해 음악 실험을 지속했다.
 
신해철이 당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가요계를 넘어 사회·정치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 DJ를 맡아 과감하면서 파격적인 발언으로 '마왕'이란 별명을 얻었던 그는 '엘리트 뮤지션'으로 주목받았다. 서강대 철학과 출신(중퇴)이다.

정치적인 발언과 행동도 서슴지 않았고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과감하게 내뱉는 '독설 논객'으로도 통했다. 사회를 뜻하는 소사이어티(society)와 연예인을 가리키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합쳐 만든 신조어인 소셜테이너의 원조 격이다. MBC TV '100분 토론'에 여러 차례 출연해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 간통죄 반대, 학생 체벌 금지 등을 주장했다.

신해철은 2014년 10월17일 복강경을 이용한 위장관유착박리 수술 등을 받고 고열과 복통 등을 호소하다가 열흘 뒤 사망했다. 이후 사회적으로 의료사고 논란이 번졌다. 2016년에는 소위 신해철 법으로 통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유튜브계정 크롬포에버에는 신해철 6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는 영상이 여러개 올라와 있다. 오는 30일까지만 공개하며 이후에는 삭제한다.

이날 오전 0시에는 지난 2007년 신해철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같은 해 11월 24~25일 선보인 '데뷔 20주년 기념 – 2007 신해철 콘서트'(부제 일렉트릭 서커스)의 25일 공연분을 올렸다. 

와이어에 매달린 배우가 애절하고 애크러배틱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연극 형식의 '굿바이 얄리' 무대로 시작하는 2시간35분짜리 이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펑펑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유재하. 2020.10.27. (사진 = 유재하 장학재단 제공)
유재하. 2020.10.27. (사진 = 유재하 장학재단 제공)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와 가객 김현식은 11월 첫날이면 자연스레 소환된다. 11월1일은 두 사람의 기일이다. 각각 33주기, 30주기를 맞았다.

유재하는 1987년 11월1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25세였다. 김현식은 1990년 11월1일 간경화로 세상과 작별했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다.

두 사람은 음악적 인연도 있다. 1986년 유재하는 김현식의 백밴드였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건반주자를 잠시 지냈다. 그 때 멤버들이 쟁쟁했다. 현재 듀오 '봄여름가을겨울' 멤버들인 김종진(기타)과 전태관(드럼) 등도 함께 했다.

음유시인으로 통하는 유재하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의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았다. 무엇보다 클래시컬 팝 앨범 1장으로 대중음악계에 한 획은 그은 싱어송라이터로 평가 받는다.

1987년 8월 내놓은 데뷔작이자 유작 '사랑하기 때문에'가 사후에 영향력과 가치를 인정받았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우울한 편지' '지난날' '가리워진 길' '사랑하기 때문에' 등 수록곡 대부분이 인기를 끌었다. 클래식 음악 전공자로서 화성학, 대위법 등을 배운 그는 한국형 팝 발라드의 문을 연 개척자로 불린다.

고인을 기리는 '유재하음악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갑작스런 사망으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자 유족이 음원 수익금 등으로 장학회를 설립, 신인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기 위한 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1989년 제1회 대회부터 지난해 제29회 대회까지 매년 유재하의 기일 즈음에 열려왔다.

그동안 조규찬, 고찬용, 유희열, 김연우, 강현민, 루시드폴, 이한철, 방시혁, 자화상(정지찬·나원주), 스윗소로우 등 300여명의 싱어송라이터를 배출했다. 올해 본선에는 권월, 나상현씨밴드, 노동자3071 등 10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올해는 오는 11월 중 무관중 온라인 무대로 우승자를 가린다.

김현식. 2020.10.27. (사진 = 뉴시스 DB)
김현식. 2020.10.27. (사진 = 뉴시스 DB)

1980년 1집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데뷔한 김현식은 걸출한 보컬리스트로 평가 받는다. 점차 나빠지는 건강 탓에 목소리 역시 점점 탁해졌는데, 그것이 오히려 매력이 됐다.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뮤지션으로 통한다. 정해진 형식이나 틀을 벗어난 '순수한 사랑'을 노래해 '사랑의 가객'으로도 불린다. 아픈 몸으로 인해 갈라지고 탁한 생소리가 고독과 상처받은 이들에게 카타르시스 효과를 줬다는 평도 있다.

'넋두리'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내 사랑 내 곁에'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1986년 발표한 3집에는 유재하가 만든 '가리워진 길'이 실려있다. 지난해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게 김현식이 부른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사랑했어요'가 개막하기도 했다.

김현식과 친분이 두터웠던 가수 김장훈이 고인을 추억하는 '랜선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생전에 그룹 사운드 '신촌블루스'로 활동하는 등 신촌과 인연을 맺은 김현식을 기리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가 2015년부터 열어온 '김현식 가요제'도 오는 11월20일 온라인으로 열린다. 서대문구는 작년 10월 신촌 창천문화공원에 김현식 스토리텔링 조형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힙합그룹 '에픽하이'는 2004년 발표한 정규 2집 '하이 소사이어티'에 유재하·김현식에게 헌정한 '11월1일'을 실었다. 세 멤버는 전설이 된 두 가수를 이렇게 그리워했다.

"피아노와 통기타 멜로디로 꿈을 채웠고 / 현실보다 그사람은 음악을 사랑했었죠 / 오(Oh) 그 지난날 난 다른 길에 발 딛고 / 무대 위에서 내게 보내던 분홍빛깔 미소 아직도 / 그때가 그립다 그땐 사랑과 열정이 독이 될 줄 몰랐으니깐 / 괴리감은 천재성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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